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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이 쌓여도 일은 늘 어렵다

시니어 PM으로 성장한다는 것

PM으로 일하다 보면 일정 시점에 이런 벽에 부딪힌다.

**“업무는 익숙해졌는데, 왜 성장은 더디게 느껴질까?”

기획도, 일정 관리도, 협업도 익숙한데 일의 깊이와 시야가 정체된 듯한 순간이 온다. 이 시기를 처음 마주했을 때는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분명히 더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어제와 오늘 사이에 의미 있는 변화가 보이지 않았다.

이 지점이 바로 ‘실무형 PM’에서 ‘리드형 PM’으로 전환되는 시기다. 익숙함을 정체와 혼동하기 쉬운 구간이고, 이 시기를 어떻게 넘기느냐에 따라 그 다음 5년이 달라진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PM으로 오래가기 위해서는, 더 많은 기능을 기획하는 대신 더 넓은 맥락을 이해하고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으로 진화해야 한다. 이 글은 그 진화의 과정을 다섯 가지 축으로 정리해 본 기록이다. 이미 답을 다 알고 쓰는 글이 아니라, 매일 같은 질문 앞에서 흔들리는 한 PM이 자기에게 다시 말하는 글이기도 하다.

기획력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맥락력이다

초기 PM이 빠르게 성장하는 이유는 기획력 때문이다. 요구사항을 명확히 정리하고, 기능을 구조화하며, 팀이 움직일 수 있는 설계를 만드는 역량. 신입 시절에는 이 기획력만 잘 갖춰도 한 단계씩 빠르게 올라간다.

하지만 3~5년 차를 넘어서면 그 스킬만으로는 부족해진다. 조직은 이제 “무엇을 만들까”보다 “왜 만들어야 하는가”를 묻기 시작한다. 같은 기능이라도 어떤 회사에서는 핵심이지만, 어떤 회사에서는 자원 낭비가 될 수 있다. 그 차이를 가르는 것이 바로 맥락이다.

Marty Cagan은 『Inspired』에서 “훌륭한 PM은 기능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정의하는 사람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시니어 PM은 기능 단위가 아니라 문제 단위로 일한다.

  • 사용자의 Pain Point가 실제 비즈니스 목표와 맞닿아 있는가
  • 이 프로젝트가 전체 로드맵 안에서 어떤 우선순위에 있는가
  • 해결해야 할 핵심은 ‘기능 추가’인가, ‘문제 구조의 재설계’인가

즉, 시니어 PM은 ‘요구를 정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맥락을 해석하는 사람’이다. 같은 회의에 들어가도 주니어 PM은 다음 화면을 묻지만, 시니어 PM은 이 화면을 왜 만들기로 했는지를 다시 묻는다. 회의실의 질문이 달라지면 결과물의 깊이도 달라진다.

일 잘하는 PM과 오래가는 PM의 차이 : 의사결정 구조를 만든다

Teresa Torres는 『Continuous Discovery Habits』에서 “PM의 가치는 더 많은 실험보다, 더 나은 판단 체계를 만드는 데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내가 그동안 너무 많은 결정에 직접 손을 대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리드 PM의 일은 직접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결정 구조를 설계하는 일이다. 즉, 팀이 스스로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기준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PM 한 명에게 모든 결정이 몰리지 않고, 같은 기준으로 빠르게 결정되는 문화가 만들어진다.

이를 위해 필요한 건 세 가지다.

1️⃣ 가설 기반 사고 (Hypothesis Thinking) 모든 제안에는 “왜 이게 맞다고 생각하는가”를 붙인다. “그냥 이렇게 가 봅시다”가 사라지고, “우리는 이 가설이 맞다면 이 지표가 움직일 것이라고 봅니다”라는 문장이 회의의 출발점이 된다.

2️⃣ 데이터를 근거로 한 판단 구조 (Data-informed, not Data-driven) 데이터가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의 품질을 높이는 도구라는 인식. 데이터에 끌려가는 PM과 데이터를 활용하는 PM은 결과물이 다르다.

3️⃣ 의사결정의 투명성 (Decision Transparency) 왜 이 결정을 내렸는지를 명확히 공유하는 습관. 결정의 이유가 공유되면 같은 종류의 결정이 다시 들어왔을 때 팀이 스스로 같은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된다.

PM이 팀의 의사결정 구조를 설계할 수 있을 때, 프로젝트는 PM 개인 역량에 의존하지 않고 ‘시스템’으로 굴러가기 시작한다. 이게 시니어 PM의 역할이다.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PM은 본인이 더 큰 문제로 시선을 옮길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다.

조율자에서 리더로 : 영향력의 전환

많은 PM이 “나는 리더가 아니라 조율자야”라고 말한다. 한때 나도 그렇게 말했다. 조율자라는 단어는 책임의 무게를 낮춰 주는 편리한 표현이지만, 시니어 PM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 정의부터 바뀌어야 한다.

좋은 PM은 팀을 조율하는 사람이 아니라, 방향을 제시하는 리더다.

  • 목적이 불명확할 때 목표를 명확히 제시하고
  • 갈등이 생겼을 때 논점을 정리해 방향을 잡고
  • 데이터와 직관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결정을 내린다

Ben Horowitz는 『The Hard Thing About Hard Things』에서 “리더십은 쉬운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어려운 답을 따를 수 있게 만드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이 한 줄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시니어 PM이 직면하는 결정 대부분은 정답이 없는 결정이다. 어떤 결정이든 누군가는 잃고, 누군가는 얻는다.

시니어 PM은 책임의 무게를 안다. 그래서 의견보다 결정의 후폭풍까지 감당하는 태도를 갖는다. 결정을 내린 뒤에 따라올 반대, 실패, 재조정까지 함께 책임지겠다는 자세. 그게 ‘영향력’의 시작이다.

성장의 다음 곡선 : 문제를 푸는 사람에서, 문제를 정의하는 사람으로

PM의 커리어에서 ‘성장 곡선이 평평해지는 시점’이 온다면, 그건 더 이상 “문제를 푸는” 방식으로 성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시점부터 필요한 건 문제 정의력이다.

  • 고객이 겪는 진짜 불편함이 무엇인지
  • 비즈니스가 실제로 풀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 조직이 이 문제를 풀어야 하는 ‘타이밍’이 맞는지

문제 정의는 의외로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다. 답을 빨리 내고 싶은 마음을 잠시 미루고, 문제를 더 정확하게 보는 데 시간을 쓰는 일이라서 그렇다. 처음에는 답답하게 느껴지지만, 한 번 정확한 문제 정의 위에서 출발한 프로젝트는 실행 속도가 완전히 다르다.

문제를 정의할 줄 아는 PM은 자연스럽게 ‘문제의 주인’으로 불린다. 그리고 이 단계에 도달했을 때, 당신은 더 이상 실무자가 아니라 전략가(Strategic PM)에 가까워진다. 이 전환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지 않는다. 매일의 회의에서 한 번씩 “이 회의의 진짜 질문은 무엇인가”를 던지는 작은 습관이 쌓여 만들어진다.

시니어 PM으로의 성장, 결국 태도의 문제

PM의 성장은 결국 세 가지로 귀결된다.

  • 맥락을 읽는 힘. 단편적인 요구가 아닌, 시스템 전체를 본다.
  • 결정의 구조화. 팀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만든다.
  • 리더십의 전환. 설득이 아닌 신뢰로 팀을 움직인다.

즉, 시니어 PM은 ‘더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더 일관된 사고를 가진 사람이다. 그날 그날 다른 판단을 내리는 사람은 신뢰를 얻기 어렵다. 같은 기준으로 같은 방식으로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팀의 중심이 된다.

일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일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

PM으로 오래간다는 건, 일을 잘하는 게 아니라 일의 원리를 이해하고 유지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기능, 더 빠른 실행을 자랑하는 것보다, 같은 결정을 더 일관되게 내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일에 가까워진다.

경험이 쌓여도 일은 늘 어렵다. 다만 어려움의 종류가 달라진다. 신입 때의 어려움이 “어떻게 할지를 모르는 어려움”이었다면, 시니어의 어려움은 “어떻게 결정해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어려움”이다. 후자는 답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외롭다. 그래서 시니어 PM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스킬이 아니라 자기 기준을 유지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나도 답이 다 정리된 사람은 아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빨리 가는 것보다 오래가는 것이 더 어렵고, 그래서 더 가치 있다는 것. 그 길 위에서 오늘도 한 번 더 회의에 들어간다. 같은 회의지만, 어제와는 조금 다른 질문을 들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