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 멈춰 있던 프로젝트를 세상에 내놓기까지
프로젝트 회고록. PM의 영역은 어디까지예요?
이 글은 약 2년간 논의만 반복되던 ‘안심번호 개선’ 과제를 실제로 실행에 옮긴 경험을 기록한 것이다. 처음 이 과제에 손을 댄다고 했을 때, 사내 여러 분에게 들은 첫 마디는 비슷했다. “그거 우리도 몇 번 시도했었는데요.” 시도는 있었지만 결론은 없는 상태로 멈춰 있던 과제, 그래서 누가 다시 꺼내기에는 조심스러웠던 일이었다.
기존 방식의 한계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번호 노출의 리스크, 자원 고갈 문제, 장애가 발생했을 때의 대응 어려움. 유관 부서 모두가 이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지만, 비용 구조와 서비스 정책, 외부 협력사(통신사)와의 계약 등 다양한 이해관계로 인해 실행이 쉽지 않았다. 한 번에 풀어야 할 매듭이 너무 많았고, 그 매듭은 한 부서의 노력만으로 풀리지 않는 종류였다.
먼저 한 일은 문제의 본질을 데이터로 증명하는 일이었다. 주문당 050번호 사용량과 재사용률을 수치로 정리하고, 고객 VOC를 유형화하여 리스크를 시각화했다. 막연하게 “위험하다”고 말하던 문장을 “이 시점에 이 정도의 사용량이 발생하고 있고, 재사용률은 이 수준이며, VOC는 이런 유형으로 누적되고 있다”는 구체적인 그림으로 바꾸는 작업이었다. 문제를 보이게 만들지 않으면 누구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이 과제를 시작하며 다시 한번 배웠다.
이후 개발팀과 함께 050을 대체할 수 있는 VoIP 구조를 검토했고, 네이티브로 모듈을 개발해 어디든 붙여 보자는 목표를 잡았다. 법무팀과는 개인정보 보호법상 유효성 검토를 병행했다. 약 5개월간의 협의 끝에, “기존 050번호 체계를 완전히 걷어내는 대신, 주문 트랜잭션 기반의 내부 통화 ID 발급 구조로 대체”하는 방향으로 결론이 났다. 최종적으로는 안심번호를 Mvoip(모바일 환경에서 이용하는 인터넷 전화)로 대체해 개발했고, 개인 번호가 외부로 노출되지 않으면서도 고객–가게–라이더가 자연스럽게 통화할 수 있는 구조로 오픈되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PM은 단순히 “요건을 정의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슈를 통합적으로 해결하고, 제도·기술·운영의 접점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라는 것을 배웠다. 이 글은 그 과정을 네 단계로 나눠 정리한 회고다.
바텀업 과제의 출발선
이번 프로젝트는 위에서 떨어진 일이 아니었다. 누구도 “이걸 하자”고 강하게 말하지 않았고, 그만큼 어느 팀도 주도권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건 꼭 필요하다’는 문제의식 하나로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해야 했던 일은 필요성을 증명하는 일이었다. “왜 이걸 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시장 데이터를 모으고, 유관 부서의 업무 구조를 이해하고, 그들이 이 일을 왜 망설이는지, 어떤 리스크를 우려하는지 하나씩 풀어 보았다.
흥미로웠던 점은, 부서마다 망설이는 이유가 달랐다는 것이다. 어떤 부서는 비용을, 어떤 부서는 운영 리스크를, 어떤 부서는 외부 협력사와의 관계를 우려했다. 처음에는 이 모든 이유가 “안 된다”의 다양한 표현이라고 생각했지만, 한 번씩 만나면서 들여다보니 각각의 이유가 정당했다. PM의 첫 번째 역할은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 아니라, 이 프로젝트를 왜 해야 하는지 그리고 각 부서가 어떤 부담을 안게 되는지를 함께 설명할 수 있도록 설득력을 만드는 일이었다.
이때 작성한 자료는 거창한 기획서가 아니었다. 두 페이지짜리 요약 노트에 가까웠다. 첫 페이지에는 데이터로 본 현재의 리스크, 두 번째는 대안의 큰 그림과 짧은 영상이었다.
조율의 기술
유관 부서를 설득하는 일은 단순한 커뮤니케이션이 아니었다. 각 부서의 KPI, 관점, 우선순위를 이해하지 못하면 대화조차 성립되지 않는다. 같은 단어를 써도 부서마다 다른 의미로 해석한다는 사실을 이때 다시 한번 체감했다.
프로젝트 초기에는 “왜 이 프로젝트를 같이 해야 하는가, 같이 하면 어떤 이점이 있는가”를 중심으로 설득과 조율의 포인트를 잡았다. 개발팀은 안정성을, 운영팀은 리스크를, 기획팀은 방향성을 본다. 모두가 같은 목표를 향하고 있지만, 보는 각도가 다르기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 만나면서 단계적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전체 회의 한 번보다, 1:1 미팅 다섯 번이 훨씬 효과적이었다. 큰 회의에서는 모두가 자기 부서의 입장만 짧게 말하고 끝나기 쉽지만, 1:1에서는 그 입장의 진짜 이유를 묻고 들을 수 있다. 어떤 부서의 망설임은 사실 “처음해보는 일이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하는지”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조율의 기술이라는 단어는 듣기 좋게 들리지만, 실제로는 같은 말을 다섯 번, 열 번 다르게 풀어 설명하는 인내심에 가깝다. 그리고 그 인내심은 PM이 그 프로젝트를 진심으로 필요하다고 믿을 때만 유지된다.
설계에서 실행까지
조율이 되었다고 프로젝트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PM은 실행의 출발점에 서 있는 사람이다. 기획서를 작성하고 개발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이 방향이 고객에게 여전히 유효한가”를 계속 점검하면서 정책을 수정해 나갔다. 5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시장과 사용자의 맥락도 미세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처음 잡은 정책을 한 번도 손대지 않는다는 건 사실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픈을 앞두고는 마케팅 문구, 가이드 문서, 파트너 공지까지 전 과정을 함께 검토했다. 사용자에게 닿는 첫 메시지가 정책의 의도와 어긋나면, 좋은 기능도 잘못 알려진다. 마케팅 팀이 만든 카피 한 줄, 운영팀이 작성한 안내 문구 한 줄까지 PM이 함께 보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졌던 시기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이 작업이 출시 후 VOC를 크게 줄였다.
그 과정에서 깨달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기획의 본질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림이 완성될 수 있도록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어떤 경우엔 PM이 마케터의 역할을 하고, 또 어떤 경우엔 정책 담당자처럼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 PM의 영역은 경계를 넘나들며 확장된다. 그러나 그 확장은 무모한 확장이 아니라, 일의 완성을 위한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생각한다.

결국, 오픈했다
2년 가까이 멈춰서 갈 길을 잃었던 과제가 마침내 세상에 나왔다. 누군가의 지시가 아니라 “이건 꼭 필요하다”는 신념으로 동료들과 시작한 일이었다. 오픈 그날, 팀 채널에 올라온 메시지를 작성하면서 ‘이제 끝났다’는 느낌보다 ‘이제 시작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구조가 실제 트래픽 위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위에서 어떤 새로운 VOC가 나올지를 지켜봐야 했기 때문이다.
오픈 직후 며칠은 운영팀과 함께 데이터를 같이 들여다보는 일이 많았다. 어떤 시점에 통화 실패율이 잠깐 올라갔는지, 어떤 패턴의 사용자가 이 변화에 빨리 적응했는지, 어떤 부분은 다시 다듬어야 하는지. 이 시기가 지나야 비로소 프로젝트가 진짜 끝났다고 말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배운 건, 기획의 경계를 묻는 대신 기획의 책임을 자각하는 것이었다. “여기까지가 내 일인가?”라는 질문을 한 발만 미루면, 다음 한 발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렇게 한 걸음씩 미루다 보면 어느새 프로젝트의 전체 흐름을 함께 책임지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PM의 영역은 문서가 아니라 결과로 확장된다. 그리고 그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다시 설득하고, 조율하고, 실행한다.
PM의 영역은 어디까지일까
PM은 모든 걸 아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것을 연결하는 사람인 것 같다. 누가 해야 할 일인지 모호한 순간, 그 일을 떠안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PM으로 일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내 일일까?” 개발 외의 모든 영역이 내 손을 거쳐야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기획은 설계도, 정책서, 프로토타입을 그리는 일에서 끝나지 않는다. 설득하고, 조율하고, 방향을 제시하고, 때로는 마케팅 메시지까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그 과정의 끝에서 우리는 늘 “PM은 어디까지 해야 하는 사람인가”를 다시 묻게 된다. 처음에는 이 질문이 부담스러웠지만, 이번 프로젝트를 마치고 나니 답이 조금 단순해졌다. “다 하는 거지 뭐.” 무책임한 답처럼 들릴 수 있지만, 정확한 답이기도 하다. 일의 완성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면, PM은 손을 댄다. 단, 모든 일을 직접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이 잘 되도록 연결한다는 의미에서.
멈춰 있던 프로젝트는 누군가가 손을 들어 줄 때 다시 움직인다. 그 손을 드는 일이 부담스럽다는 걸 알지만, 그 손이 결국 다음 자리를 만든다는 것도 안다. 다음에 또 비슷한 과제를 만난다면, 나는 다시 손을 들 것 같다. 그 자리가 PM이 자라는 자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