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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뉴얼 기획을 시작하기에 앞서

서비스 이해하고 페르소나 찾기

몇 개월 동안 약 400개의 고객사가 사용하고 있는 서비스를 리뉴얼하는 프로젝트를 맡았다. 숫자만 들으면 단순해 보이지만, 8년 이상 운영된 서비스에는 그 시간만큼의 결정과 타협이 쌓여 있다. 그 위에 새로운 그림을 다시 얹는 일은 단순히 화면을 새로 그리는 작업이 아니다.

회사 특성상 서비스를 오픈하고 나면 운영 기획을 주로 하는데, 최근에는 약 8년 이상 오픈된 서비스를 리뉴얼하는 프로젝트를 주로 맡았다. 운영 기획이 손에 익을수록 리뉴얼은 다른 종류의 근육을 요구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운영은 이미 있는 것을 어떻게 더 나아지게 할지를 고민하는 일이지만, 리뉴얼은 무엇을 두고 무엇을 버릴지를 결정하는 일이다.

리뉴얼 기획을 진행할 때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결국 ‘서비스 이해하기’다. 왜 리뉴얼을 해야 하는지, 어떤 콘셉트로 진행되어야 하는지, 어떤 기능을 넣고 덜어야 하는지. 다양한 관점으로 서비스를 들여다보고 기획을 진행하는 게 리뉴얼 기획의 핵심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리뉴얼 기획을 좋아하고, 특히 AS-IS 분석 단계가 굉장히 흥미롭다. 새로 만드는 것보다, 이미 있는 것을 다시 읽어 내는 일이 훨씬 어렵고 또 그만큼 재미있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긴장의 이유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회사는 수많은 고객사와 파트너사가 있다. 그리고 서비스를 내부에서 평가하는 직원들도 많다. 그래서 서비스에 대한 인터뷰나 서베이를 하면 다양한 의견을 한 번에 수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번 리뉴얼 프로젝트에서도 역시 AS-IS 분석을 위해 벤치마킹을 진행했고 인터뷰도 함께 진행했다. 그런데 인터뷰에서 굉장히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사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나는 적지 않게 긴장하고 인터뷰이를 만났다. 사내의 내부 직원들이 외부 업체에서 이 서비스가 좋지 않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입을 모았기 때문이다. 본인들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래서 외부 인터뷰는 분명히 거센 비판이 쏟아질 거라고 예상했다.

인터뷰는 총 15팀을 선정해 진행했다.

  • 고객사와 파트너사를 관리하는 내부 직원 3팀
  • 타사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는 고객사 4팀
  • 자사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는 고객사 4팀
  • AS-IS 서비스와 연동된 파트너사 4팀

주요 질문은 서비스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장단점, 이미지), 주로 사용하는 기능은 무엇인지, 추가되었으면 하는 기능은 무엇인지. 주로 사용성을 중심으로 진행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사용자 조사라고 생각했지만, 결과를 받아 들고 나서야 이 인터뷰가 프로젝트의 방향을 통째로 바꿀 수도 있는 자료라는 걸 알게 되었다.

예상과 다른 인터뷰 결과

인터뷰 결과는 내부 직원의 평가와 사뭇 달랐다.

대부분의 고객사는 AS-IS 서비스가 가진 기능의 1/3 정도만 사용하고 있었고, 나머지 기능은 존재 자체를 모르거나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었다. 자사 서비스를 쓰고 있는 고객사도, 타사 서비스를 쓰고 있는 고객사도 마찬가지였다. “있는지도 몰랐어요”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연동된 파트너사도 흐름이 비슷했다. 그들은 대부분 현재 서비스에 만족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늘 사용하던 기능만 사용하고 있어서, 그 외의 기능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업무 흐름 안에서 필요한 부분은 이미 충분히 작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부 직원의 인터뷰에서는 정반대의 의견이 나왔다. AS-IS 서비스는 기능이 부족하고, 사용자들은 그 외의 기능을 더 원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같은 서비스를 두고 내부와 외부가 완전히 다른 그림을 보고 있었다. 한쪽은 “기능이 부족하다”고 말했고, 다른 한쪽은 “있는 기능도 다 못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 차이는 그저 의견 차이로 넘기기엔 너무 컸다. 어떤 시야를 기준으로 TO-BE를 그리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내부 시야로 기획하면 기능은 늘어나고 복잡도는 커진다. 외부 시야로 기획하면 기능을 덜어 내야 한다. 두 선택지 사이에 서서, 나는 한참을 망설였다.

사공이 많으면 배는 어디로 가는가

인터뷰 결과를 분석하면서 여러 고민에 빠졌다. 실제로 사용자가 쓰는 기능이 우리가 제공하는 기능의 1/3에 불과하다면, TO-BE에서는 기능을 덜어내야 한다. 그런데 내부 직원들의 의견은 정반대다. 어느 장단에 발을 맞춰야 하는 것인지 한참을 혼란스러웠다.

여러 가지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은 “기능을 덜어내자”였다. 사용자가 실제로 쓰는 기능을 중심으로 TO-BE를 설계하고, 내부에서 요청한 추가 기능 중 페르소나에 부합하는 일부만 함께 설계하는 방향. 이 결정은 정답이라기보다, 페르소나를 기준점으로 삼은 결과였다.

결정을 내리기까지 가장 많이 자문한 질문은 “이 기능을 누가, 왜 쓰는가”였다. 내부 직원이 “있으면 좋겠다”고 한 기능들 중 다수는 본인들의 운영 편의성에 가까운 요구였다. 사용자의 일이 아니라 운영의 일이었다. 운영 편의성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지만, 그건 별도의 어드민이나 운영 도구로 해결할 영역이지 사용자 서비스의 메인 화면을 채울 이유는 아니었다.

물론 덜어낸 기능을 원하는 사용자가 나중에 등장하면 어떻게 할까, 라는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페르소나를 분명히 세우고 나니, 그 걱정 역시 시야 안에서 처리할 수 있었다. 등장하지 않을 사용자를 위해 제품을 무겁게 만드는 것보다, 등장한 사용자에게 더 좋은 경험을 주는 것이 우선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리뉴얼 기획을 시작했다.

페르소나 없이는 방향도 없다

이번 프로젝트를 마치며 머리에 남은 한 문장은 “사공이 많으면 배는 산으로 간다”였다. 너무 흔한 표현이지만, 리뉴얼 프로젝트에서는 가장 자주 부딪히는 진실이다.

초기 분석을 할 때 페르소나를 명확히 잡지 않으면, 인터뷰에서 나온 모든 의견이 똑같이 무게감을 가지고 들린다. 내부 직원의 의견도 중요하고, 고객사의 의견도 중요하고, 파트너사의 의견도 중요하다. 모두 중요하기 때문에, 모두를 만족시키려다 결국 누구도 만족하지 않는 결과물이 나온다. 8년 동안 쌓인 기능 더미가 만들어진 과정도, 어쩌면 비슷한 흐름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리뉴얼은 단순히 새 화면을 그리는 일이 아니다. 누구의 일을 가장 가볍게 만들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다. 그 답이 분명해야 기능을 덜어낼 수 있고, 그 답이 분명해야 새 기능도 자리를 잡는다.

다음 리뉴얼 프로젝트에서도, 가장 먼저 던질 질문은 같을 것이다. “이 서비스의 페르소나는 누구인가.” 그 한 줄이 명확해질 때까지 화면을 그리지 않는 것. 그게 리뉴얼 기획자가 가장 먼저 지켜야 할 원칙이라고, 이번 프로젝트가 다시 한번 알려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