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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없는 날은 없다

PM의 하루를 버티는 방법

PM의 하루는 늘 계획보다 복잡하다. 회의, 조율, 문서, 슬랙, 그리고 예측 불가능한 변동들. 매일 똑같이 시작하지만, 끝날 때마다 다른 종류의 피로가 남는다.

어떤 날은 회의가 너무 많아 입이 지쳤고, 어떤 날은 슬랙 알림에 시달려 머리가 멍해졌다. 또 어떤 날은 문서만 종일 썼는데도 일이 끝난 느낌이 들지 않았다. 분명히 바빴는데, 무엇이 끝났는지 정리되지 않는 그 감각. PM이라면 한 번쯤 겪어 보았을 것이다.

신입 시절에는 그 감각을 단순히 ‘바쁜 직업이라서 그렇다’고 받아들였다. 그런데 연차가 쌓일수록 그 안에 분명한 패턴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같은 양의 일을 해도 어떤 날은 정리된 느낌으로 퇴근하고, 어떤 날은 머릿속이 어지러운 채로 마무리된다. 그 차이를 만드는 건 일의 양이 아니라 하루를 운영하는 방식이었다.

그 속에서도 나는 나만의 리듬을 만들어야 했다. 이 글은 그 리듬을 찾기까지의 기록이다. 어디까지나 내 방식이고, 누군가에게는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자신만의 리듬을 가진 PM과 그렇지 않은 PM은 1년 뒤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된다는 점이다.

오전 9시. 혼자 생각하는 시간

하루 중 유일하게 방해받지 않는 시간이다. 대부분의 PM은 ‘소통하는 사람’으로 정의되지만, 좋은 소통은 결국 정리된 생각에서 출발한다. 머릿속이 어수선한 채로 회의에 들어가면 그 회의는 반드시 의견을 모아야 할 자리가 아니라 내 생각을 정리하는 자리로 변한다. 그렇게 되면 함께 있는 모두의 시간을 소모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출근 후 30분 동안 메일이나 슬랙을 열지 않는다. 그 시간엔 위키를 켜고, 어제 쌓인 생각들을 정리한다. 어제 끝나지 않은 논쟁, 답변하지 못한 질문, 다음 단계를 결정해야 할 안건들. 그것들을 적어 두면 머릿속이 한결 가벼워진다.

“무엇이 해결되지 않았는가?” “오늘 꼭 결정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두 가지 질문으로 오늘의 우선순위를 세운다. 답할 수 없는 질문은 일단 옆에 둔다. 답해야 할 질문이 분명해지면, 그날의 회의는 의외로 짧고 단단해진다. 이게 나만의 작은 워밍업이다. 출근 후 첫 30분을 어떻게 쓰는지가 하루 전체의 색깔을 결정한다는 걸 시간이 지나면서 더 확실하게 느낀다.

오전 10시. 회의의 기술

회의는 PM의 일상 그 자체다. 하지만 모든 회의가 가치 있는 건 아니다. 회의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시간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가 더 많다는 걸 알게 된다.

회의를 주관할 때 나는 세 가지를 꼭 확인한다.

1️⃣ 회의 목적이 ‘결정’인지 ‘공유’인지 2️⃣ 필요한 자료가 모두 준비되어 있는지 3️⃣ 이 회의가 끝났을 때 ‘다음 단계’가 정의될 수 있는지

회의의 절반은 불필요한 맥락 설명으로 채워진다. “지난주에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했냐면…”으로 시작하는 그 5분이 모이면 한 달에 몇 시간이 된다. 그래서 회의 전에 꼭 3줄 요약 노트를 공유한다. 무엇에 대한 회의인지, 무엇을 결정해야 하는지, 결정에 필요한 정보가 무엇인지. 요약만 잘 써도, 회의는 절반으로 줄어든다.

그리고 회의에 참여할 때도 같은 기준을 적용한다. 이 회의가 ‘결정 회의’라면 결정에 필요한 자료를 미리 본다. ‘공유 회의’라면 듣고 메모하는 데 집중한다. 회의의 종류를 모르면 같은 회의에서도 사람마다 다른 결과를 가져간다.

오후 1시. Slack 속에서 일하기

오후는 메시지가 폭발하는 시간이다. 개발, 디자인, 마케팅 채널에서 동시에 메시지가 쏟아진다. 점심을 먹고 자리에 돌아오면 슬랙 사이드바가 빨갛게 물들어 있을 때가 많다.

PM으로 일한다는 건, 사실상 정보의 흐름을 관리하는 일이다. 모든 정보를 알아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정보가 어디로 흘러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 모든 걸 실시간으로 반응할 수는 없기에, 나는 타임 블록을 만들어 집중한다.

1시간 단위로 집중 블록을 설정한다.

  • 13:00–14:00 : 슬랙·메일 확인 및 빠른 회신
  • 14:00–15:00 : 문서 작성 또는 정책 정리
  • 15:00–16:00 : 리뷰 및 회의 준비

이렇게 시간의 리듬을 스스로 설계하지 않으면 PM은 하루 종일 바빴는데 아무것도 끝내지 못한 사람이 된다. 슬랙은 늘 켜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정말 긴급한 메시지는 멘션으로 따로 온다… 나머지는 한 시간 모아서 답해도 협업에 큰 지장이 없다. 처음에는 불안했지만, 익숙해지고 나면 오히려 답변의 품질이 올라가는 것 같다. 그리고 퇴근하기 전에 못다한 답변을 마치고 퇴근한다.

오후 4시. 문서화는 PM의 언어다

PM은 말을 많이 하는 직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글로 일하는 직업이다. 회의에서 한 약속도 글로 남지 않으면 한 달 뒤에 사라지고, 결정의 근거도 글로 남지 않으면 다음 사람에게 닿지 않는다.

회의가 끝나면 최대한 그 즉시 위키에 정리한다. 누가, 언제, 무엇을, 왜. 단 네 문장으로 기록한다. 이 기록이 쌓이면 프로젝트의 흐름이 사람이 아닌 시스템에 남는다. 누가 빠지더라도 다음 사람이 이어 갈 수 있고, 몇 달 뒤에 같은 질문이 다시 올라와도 빠르게 답할 수 있다.

“기록하지 않는 일은 사라진다.” “기록하는 일은 다음 사람에게 남는다.” 이 두 문장은 PM 1년 차에 누군가 알려 줬다면 좋았을 문장이다. 그때는 모든 걸 기억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6개월만 지나도 내 결정의 이유를 내가 다시 묻고 있었다. 그래서 최대한 기록하려고하고, 업무일지나 회의록 등 내가 결정한 것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해서 작성하려고한다.

문서가 길 필요는 없다. 오히려 길수록 아무도 다시 읽지 않는다. 한 페이지짜리 결정 노트가 열 페이지짜리 문서보다 훨씬 자주 펼쳐진다.

오후 6시 이후 내일을 위한 복기

퇴근 전 10분, 오늘의 업무일지를 다시 연다.

  • 오늘 해결된 일
  • 내일로 미뤄진 일

이 두 가지를 적는다. 이건 성과를 위한 기록이 아니라, 내가 일하는 방식을 돌아보는 루틴이다. 매일 같은 양식으로 적다 보면, 어떤 주간에 내가 유난히 미루는 일이 무엇인지가 보인다. 어떤 패턴이 반복되는지도 보인다. 그게 다음 주의 개선 포인트가 된다.

PM의 하루는 불완전하다. 모든 회의가 완벽하게 끝나지 않고, 모든 문서가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정리하는 루틴이 결국 일의 퀄리티를 지켜 준다. 완벽하게 끝낼 수는 없어도, 어디까지 했는지 알고 퇴근하는 것과 모르고 퇴근하는 것의 차이는 크다.

리듬 위에서 일하는 사람

PM은 늘 조율의 중심에 있지만, 그 중심을 잡아 주는 건 결국 나 자신의 리듬이다. 회의가 많아도, 일이 흘러넘쳐도, 나만의 루틴이 있으면 흔들리지 않는다. (흔들리지 않아야한다..가 맞는 것 같다) 반대로 루틴이 없으면 일이 적은 날도 어수선해진다.

오전의 정리, 회의의 기준, 슬랙의 타임 블록, 회의 직후의 기록, 그리고 퇴근 전 복기. 이 다섯 가지는 누구의 책에서 가져온 것도 아니고, 어떤 강연에서 들은 것도 아니다. 매일 일하면서 부딪힌 자리에서 하나씩 만든 작은 규칙들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출발점이 되어 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PM의 하루는 그 리듬 위에서 완성된다. 오늘도 회의는 많고, 슬랙은 시끄럽고, 일은 쏟아진다. 그 안에서 자신의 박자를 잃지 않는 것. 그것이 결국 1년 뒤, 5년 뒤의 나를 만들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