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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자의 좋은 커뮤니케이션이란?

우리 함께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것? 문서를 잘 쓰는 것?

처음 기획팀에 들어갔을 때 나의 선임은 기획자의 업무 중 가장 주된 일은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좋은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 당시에는 도대체 좋은 커뮤니케이션이 뭘까, 그게 따로 있을까 생각했다. 말 잘하면 좋은 거 아닌가, 회의 잘 진행하면 되는 것 아닌가, 단순하게 받아들이고 넘겼다.

출처 : 네이버 사전
출처 : 네이버 사전

사전적 의미에 따르면 ‘커뮤니케이션’은 생각이나 느낌을 주고받는 일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짧고 분명한 정의지만, 실제 일터에서 이걸 잘 해내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걸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주고받는다는 단순한 단어 안에 의외로 많은 전제들이 깔려 있다. 서로의 맥락을 안다는 전제, 들을 의지가 있다는 전제, 같은 목표를 향한다는 전제. 이 전제가 깨지는 순간 커뮤니케이션은 그저 말의 양으로 변한다.

기획자는 매일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프로젝트를 기획하기 위해 클라이언트와 이야기를 나누고, 기획 콘셉트에 대해 이해관계자들과 의견을 조율하고, 기획 산출물을 바탕으로 디자인·개발 팀과 다시 이야기를 시작한다. 콘셉트를 왜 이렇게 잡았는지, 어떤 기능이 필요한지 혹은 빠져도 되는지, 일정은 어떻게 가져갈지.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사실상 하루의 절반 이상이 대화로 채워진다.

왜 그렇게 회의가 많았을까

처음 기획자로 일을 시작할 때 가장 큰 스트레스는 회의의 수가 아니라 회의의 결말이었다. 왜 이렇게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트러블이 발생할까, 왜 이렇게 의견 조율을 해야 하는 일이 많을까, 업무 하나하나를 진행할 때마다 왜 이렇게 많은 회의를 거쳐야 하는가에 대한 답답함이 있었다. 회의를 끝내고 자리에 돌아오면, 무엇 하나 결정된 게 없는 채로 다음 회의 일정만 잡혀 있을 때가 많았다.

돌이켜보면 나는 ‘좋은’ 커뮤니케이션의 방법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나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했던 커뮤니케이션은 보통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가기 위한 대화가 아니라, 내가 한 일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싶어 상대방에게 의견을 강요하는 형태에 가까웠던 것 같다. “이게 맞으니까 따라와 줘”가 아닌데 자꾸 그렇게 들리는 회의. 누구도 그걸 원하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선임이 이야기했던 ‘좋은’ 커뮤니케이션이란 무엇인지 다시 한번 고민해 보게 되었다. 좋은 커뮤니케이션은 말솜씨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라는 결론에 천천히 도달했다.

각자가 보고 있는 그림은 다르다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기획자는 AS-IS를 분석하고 요구사항을 정리하며 그에 맞는 UX·UI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클라이언트를 포함한 이해관계자들과 의견을 나누며 화면을 설계한다.

디자이너는 기획자들이 정의한 콘셉트 안에서 다시 고민하고 서비스를 디자인한다. 같은 화면을 두고도 기획자가 보는 시야와 디자이너가 보는 시야는 다르다. 기획자는 사용성·플로우·정책을 먼저 보고, 디자이너는 시각적 위계·일관성·브랜드 톤을 먼저 본다.

개발자는 서버를 포함한 개발 환경을 고민하고 그에 맞춰 기획자가 설계한 기능을 개발한다. 개발자가 가장 먼저 보는 건 데이터 흐름, 에러 케이스, 성능 한계 같은 것이다. 같은 화면 하나를 두고도 세 사람이 보는 가장 첫 번째 요소가 다르다는 사실. 이걸 잊으면 회의는 반드시 어긋난다.

이렇게 각 담당자들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그 틀 안에서 최대한의 고민과 노력을 하여 산출물을 만든다. 결국 각자가 자기 영역에서 가장 좋은 것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 좋은 노력들이 모일 때, 서로의 시야를 모른 채로 모이면 충돌이 일어난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는 각자의 고민을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조율해 나간다. 그런데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자기 의견만 피력한다면, 프로젝트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까. 답은 명확하다. 가장 목소리가 큰 사람의 방향으로 흘러가거나, 가장 책임을 회피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어느 쪽이든 좋은 결과는 아니다.

그래서 좋은 커뮤니케이션이란

지금까지 내가 몇 차례의 프로젝트를 거치며 정리한 ‘좋은’ 커뮤니케이션은 한 줄로 표현하면 이렇다. 각 담당자가 처한 환경을 이해하고, ‘나’가 아닌 ‘프로젝트’를 중심에 두고 의견을 조율해 나가는 것.

조금 더 구체적으로 풀어 보면, 좋은 커뮤니케이션을 만드는 데는 몇 가지 작은 습관이 도움이 된다고 느낀다.

첫째, 회의 시작 전에 목적을 한 줄로 정리한다. “오늘 우리가 결정해야 할 것은 ○○입니다”라는 문장 하나가 회의를 절반으로 줄인다. 결정 회의인지, 공유 회의인지, 발산 회의인지를 명시하지 않으면 모두가 다른 기대를 가지고 들어와서 결국 서로 다른 후기를 가지고 나간다.

둘째, 의견을 말하기 전에 상대의 제약을 먼저 묻는다. 개발자에게 “왜 이게 어려운가요?”를 묻기보다, “이걸 만들 때 어떤 부분이 가장 걸리시나요?”라고 묻는다. 같은 정보를 얻더라도 후자가 훨씬 빨리, 정확하게 돌아온다. 사람은 평가받는다고 느낄 때 닫히고, 협력하자고 느낄 때 열린다.

셋째, 결정의 근거를 남긴다. 회의에서 어떤 결정을 했더라도 그 이유를 기록하지 않으면 한 달 뒤에 누군가는 반드시 “왜 그렇게 했어요?”라고 다시 묻는다. 그 순간의 효율보다, 이후의 일관성을 위한 기록이 훨씬 비용이 적다.

넷째, 내 의견이 틀릴 가능성을 먼저 열어 둔다. “제가 놓친 부분이 있을 수 있는데”라는 한 마디가 회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꾼다. 이건 약함의 표현이 아니라, 함께 가장 좋은 결정을 만들겠다는 신호다.

좋은 커뮤니케이션은 계속 진화한다

좋은 커뮤니케이션은 정답이 있는 영역이 아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 프로젝트의 단계, 조직의 문화에 따라 모양이 달라진다. 다른 사람들은 나와 다른 정의를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시간이 지나면 나 역시 이 글에 쓴 정의에서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확실한 한 가지는, 좋은 커뮤니케이션은 말을 잘하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잘 보는 태도라는 점이다. 같은 단어를 쓰더라도 어떤 의도로 말하는지, 어떤 입장에서 듣고 있는지를 함께 살피는 사람이 결국 가장 좋은 결과를 만든다.

처음 선임이 알려 준 ‘좋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단어는 그때는 추상적이었지만, 지금은 매일 점검하는 기준이 되었다. 회의가 끝난 뒤 스스로 묻는다. “오늘 나는 프로젝트를 중심에 두었나, 아니면 내 의견을 중심에 두었나.” 이 한 질문이, 내가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기획자로 일하게 만든다.